첫 번째 조각을 손에 넣은 뒤, 사숙께서는 두 번째 조각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운심사(雲心寺). 복건성 북쪽 산중에 자리 잡은 오래된 사찰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고찰답게 이끼 낀 석축과 풍화된 기와가 깊은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며칠 사이 초우진과는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같은 객잔에 묵으며 시장을 오가다 보니 끼니를 함께 하는 일이 잦아졌고, 어느 날 저녁 흑사맹의 동향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혼자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소"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나는 초우진과 함께 운심사로 향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초우진은 평소와 달리 말이 적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했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강호인이라면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법이다.
운심사에 도착한 것은 해가 중천에 걸린 무렵이었다. 법연 스님의 안내로 사찰 뒤편 산비탈을 돌아가자, 오래전 폐허가 된 별원(別院)이 나타났다. 본사에서 떨어진 이 별원은 승려들이 이미 쓰지 않은 지 오래인 듯, 바람 소리와 풍경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처마 한쪽이 무너져 내려 햇빛이 비스듬히 마룻바닥을 갈랐고, 빛이 닿는 곳에선 먼지가 가루처럼 떠다녔다.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향 냄새와 곰팡이 내음이 동시에 코끝에 달라붙었다. 삭은 마룻장이 발을 디딜 때마다 끼이이 소리를 내어, 이 폐허가 사람의 무게를 기억해내는 것 같았다.
"불당 안이라 했지?"
초우진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원의 불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불당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밀어젖히자 경첩 녹슨 소리가 빈 별원 전체에 울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석불(石佛)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월에 코가 깎이고 금박이 벗겨졌지만, 그 자비로운 미소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숙의 말씀에 따르면, 두 번째 조각은 석불의 대좌(臺座)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대좌 주변을 살피며 비밀 공간을 찾았다. 대좌의 뒷면에 미세한 틈이 있었고, 힘을 주어 밀자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안은 비어 있었다.
비급 조각은 사라지고, 대신 작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먹으로 거침없이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_"남궁, 네가 아무리 숨겨도 소용없다. 세 번째 조각도 곧 손에 넣을 것이다."_
적무현(赤無玄). 쪽지에 이름은 없었지만, 사숙의 이름을 부르는 투로 보아 그가 분명했다. 사숙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 한때 사숙의 벗이자 아버지와도 가까웠으나 어둠의 길로 빠진 자.
"먼저 당했군."
초우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한 발 늦은 것이다. 적무현은 이미 두 번째 조각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우리보다 먼저 손에 넣었다.
쪽지를 품에 넣고 별원을 나왔을 때,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세 조각 중 하나를 적에게 빼앗긴 것이다. 남은 세 번째 조각마저 빼앗기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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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시장으로 돌아온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아청(雅晴)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아청은 신춘시장 구석에서 점괘를 봐주는 어린 소녀였다. 나이는 열대여섯이 될까 말까 했지만, 그녀의 점술은 강호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맞히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말에는 기이한 직감이 담겨 있었다.
시장 골목 끝에 있는 작은 천막 아래, 아청이 앉아 있었다. 앞에는 시초(蓍草)와 동전 몇 닢이 놓여 있었다. 소녀는 나를 보자 빙그레 웃었다.
"또 왔구나, 오빠."
"점괘를 하나 봐주겠나?"
아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초를 집어 들었다. 눈을 감고 한참을 중얼거린 뒤, 시초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화산이수(火散而收)."
"무슨 뜻이지?"
아청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시초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불이... 막 흩어져. 사방으로. 근데 물이 그걸 모아."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니까, 흩어진 것은 물로 모인다는 뜻인데..."
아청은 시초의 배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 어린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자의 눈이었다.
"여기에..." 시초 한 줄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쁜 게 있어. 세 번째 조각 근처에."
"나쁜 것?"
"배신." 아청이 단어를 내뱉듯 말했다. 자기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낯선 듯, 눈을 깜빡였다. "배신의 기운이... 보여."
배신. 그 단어가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누구의 배신인가? 적무현의 배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배신자가 있다는 뜻인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나?"
아청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까의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다시 어린 소녀의 해맑은 얼굴이었다.
"점괘는 길을 보여줄 뿐이야. 걷는 건 오빠의 몫이지."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린 채 시장을 빠져나왔을 때, 초우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면서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오, 초 형?"
초우진이 평소처럼 조용히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묘한 힘이 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 걱정 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것이 이 사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감추어진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초우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한적한 골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곽소준 말이다... 최근 움직임이 수상해."
곽소준. 청해표국(靑海鏢局)의 소표두(少鏢頭)였다. 신춘시장에 머무르는 동안 곽표두의 소개로 몇 차례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쾌활하고 의리 있는 인상의 사내였는데, 수상하다니.
"무슨 뜻이오?"
"어젯밤 그가 홀로 객잔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네. 뒤를 밟으려 했으나 중간에 놓쳤어. 그런데 그가 향한 방향이..."
초우진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흑사맹 무인들이 출몰하는 쪽이었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청의 점괘가 떠올랐다. 배신의 기운. 설마 곽소준이? 아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었다. 단지 같은 방향으로 갔다는 것만으로 그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소?"
"없네. 그래서 말이 조심스러운 거야. 하지만 조심하라는 뜻에서 말해두는 거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우진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가 굳이 입을 연 것은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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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후, 나는 청해표국을 찾아갔다. 세 번째 조각의 단서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곽소준의 아버지인 곽표두(郭鏢頭)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청해표국은 신춘시장 서쪽에 자리한 중규모의 표국이었다. 정문에는 '청해표국'이라 쓰인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고, 마당에서는 표사(鏢師)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마당을 지날 때 곽표두의 우렁찬 고함이 먼저 들려왔다.
"왼발! 왼발을 빼라, 이놈아! 그따위 보법으로 산적을 만나면 짐짝보다 먼저 뒹굴 줄 알아!"
표사 두 명이 혼비백산하여 자세를 고쳤다. 그런데 곽표두는 고함을 끊자마자 마구간 쪽으로 성큼 걸어가더니, 절뚝거리는 말 한 필의 앞발을 들어 올려 발굽을 살피기 시작했다. 투박한 손가락이 말굽의 갈라진 틈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부하들에게 벼락같이 호통을 치던 같은 사내가, 다친 짐승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편자가 닳았어. 오늘 중으로 갈아 신겨라."
마부가 달려왔으나, 곽표두는 이미 직접 대장간 연장을 들고 와 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마구간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기엔 그 뒷모습이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도와드릴까요?"
곽표두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턱으로 말의 뒷다리를 가리켰다.
"거기 잡아. 이놈이 겁이 많아서, 다리를 들면 발버둥을 치거든."
나는 말의 뒷다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늙은 말은 낯선 손길에 흠칫했으나, 이내 콧김을 내뿜으며 얌전해졌다. 곽표두가 녹슨 편자를 족집게로 빼내고, 새 편자를 말굽에 대어 못을 박기 시작했다. 망치 소리가 탕, 탕, 마당에 울렸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말이 귀를 쫑긋 세웠다가 도로 늘어뜨리길 반복했다.
"이 녀석은 십 년 된 늙은 말인데, 사람보다 성실해."
곽표두가 편자를 다 박고 나서 말의 목덜미를 쓸어주며 말했다. 거친 손바닥이 갈기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늙은 말이 눈을 지긋이 감았다.
"험한 산길에서 수레가 빠졌을 때, 표사 세 놈이 못 빼낸 바퀴를 이놈이 혼자 끌어냈어. 뒷다리에 힘줄이 나가서 그때부터 절뚝거리게 됐지."
곽표두가 코웃음을 쳤으나 그것은 자랑이었다. 늙은 말의 앞이마에 붙은 지푸라기를 떼어내는 손끝에 거친 애정이 묻어 있었다. 나는 문득 사숙께서 내게 검을 쥐여주시던 날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오래 곁에 두고 아끼는 사람의 손은, 직업이나 성정과 관계없이 비슷한 모양을 하는 것이었다.
"자, 됐다. 천천히 놔."
내가 뒷다리를 놓자, 늙은 말이 시험 삼아 발굽을 땅에 탁 딛었다. 절뚝임은 여전했으나, 편자가 바뀌니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곽표두가 흡족한 얼굴로 말의 엉덩이를 툭 치며 마구간 안으로 들여보냈다.
"고맙다, 젊은이. 손이 부드럽구만. 말이 안 놀라는 걸 보니 짐승에게 해코지를 해본 적이 없는 놈이야."
대단한 칭찬도 아니었건만, 입이 근질거렸다. 표국 마당 한구석에 소똥 냄새와 짚 냄새가 섞여 풍겼다. 어쩐지 정겨운 냄새였다.
곽표두가 마부에게 마저 지시를 마치고 나서야 대청으로 올라와 나를 맞이했다.
곽표두는 오십 대 중반의 건장한 사내였다.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고, 말투는 호방했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특유의 위엄이 느껴졌다.
나는 품속에서 사숙께 받은 옥패를 꺼내 보였다. 초록빛 옥에 새겨진 용 문양을 본 곽표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심한 표정 뒤에 숨어 있던 날카로움이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풀렸다.
"남궁 사숙의 옥패로군. 반갑네, 젊은이."
곽표두가 상을 끌어와 밥상을 내밀었다. 소박한 만두와 국밥이었다.
"배는 채웠나? 빈속에 검을 잡으면 죽기 딱 좋아."
무뚝뚝한 말투였으나, 만두를 건네는 손이 뜻밖에 정갈했다. 나는 감사히 받아 한 그릇을 비웠다.
"곽 표두님, 귀 표국에서 운송하신 물건 중에 운심사와 관련된 것이 있습니까?"
곽표두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운심사... 오래된 절이지. 혹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만 비급과 관련된 중요한 물건을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곽표두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조각이라... 실은 그 조각을 직접 보관하기엔 위험해서, 조각이 숨겨진 장소를 적은 서신만 따로 만들어 소준이에게 맡겼네. 그 녀석이 동쪽 산길 어딘가에 보관했을 텐데, 최근 그쪽을 자주 다니거든."
곽표두의 말끝이 거칠어졌다.
"그놈의 자식이 요즘 통 말을 안 해. 어미가 죽고 나서부터 저 혼자 다 짊어지겠다고 — "
말이 거기서 뚝 끊겼다. 곽표두가 입을 다문 채 찻잔을 들었다가,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다시 내려놓았다. 잠깐이었으나 그 침묵 속에 아비의 속앓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동쪽 산길. 그것은 청해표국이 관리하는 운송 경로 중 하나였다. 나는 곽표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표국을 나왔다.
골목을 걷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곽소준의 수상한 행동, 아청의 점괘, 적무현의 쪽지. 모든 것이 하나로 엮이는 듯하면서도 아직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화산이수. 불처럼 흩어진 것은 물로 모인다.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는 날, 그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그 진실의 한가운데에 배신이 도사리고 있다면, 과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밤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나는 객잔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품속의 첫 번째 조각을 꼭 움켜쥐었다. 적어도 이것만은 지켜야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